중고차 사이트에서 슈퍼카 매물을 구경하다 보면 보통은 마음이 편해집니다. 억 소리 나던 차들도 몇 년 지나면 반값이 되어 있는 걸 보면서 "역시 새 차로 사는 건 아니구나" 하고 넘기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 차만은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합니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VJ 로드스터. 출고된 지 6~7년이 지났는데, 지금 매물 가격표가 새 차 값보다 높습니다.
왜 이렇게 됐는지, 그리고 이 가격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정리해봤습니다.
7억에 팔던 차가 지금 9억 5천
SVJ 로드스터는 2019년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됐고, 그해 11월 서울 남산에서 열린 '람보르기니 데이 서울 2019'에서 국내에 소개됐습니다. 유럽 기준 가격은 세금 제외 38만 7,007유로, 미국은 57만 3,966달러였고 당시 국내 매체들은 7억 원대로 보도했습니다.
2026년 8월 기준 국내 매물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 21년 5월식(4,050km): 호가 9.1억 원
- 20년 12월식(7,408km): 호가 9.5억 원
- 20년 9월식(24,500km): 호가 8.2억 원
- 21년 6월식(45,000km, 슈퍼카치고는 많이 탄 축): 호가 7.2억 원
세 대 모두 6년 전 신차 가격 근처이거나 그 위에 있습니다. 다만 이건 팔린 가격이 아니라 판매자가 받고 싶어 하는 호가라는 점은 분명히 하고 가야 합니다. 실거래 이야기는 뒤에서 따로 다룹니다.
SVJ 로드스터는 어떤 차였나
- 엔진: 6.5L V12 자연흡기
- 최고출력: 770마력
- 최대토크: 720Nm(약 73.4kg·m)
- 변속기 / 구동: 7단 ISR 싱글클러치 / 사륜구동
- 0→100km/h: 2.9초, 0→200km/h: 8.8초
- 최고속도: 350km/h 이상
- 루프: 탈착식 카본 패널(보닛 아래 수납)
- 쿠페 대비 중량: 약 +50kg
- 생산 대수: 800대(창립연도 기념 SVJ 63 로드스터 63대 포함)

가속 숫자만 보면 요즘 하이브리드 슈퍼카에 밀립니다. 후속 레부엘토는 0→100km/h가 2.5초니까요. 그런데 이 차를 찾는 이유는 기록이 아닙니다. 6.5리터 자연흡기 V12에 싱글클러치 변속기, 거기다 열리는 지붕이라는 조합입니다. ISR 변속기는 요즘 듀얼클러치처럼 매끄럽지 않고 변속할 때마다 뒤통수를 한 번씩 치는 느낌이 나는데, 그 투박함을 일부러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 하나: 레부엘토엔 아직 로드스터가 없습니다
레부엘토는 2023년 3월 공개됐습니다. V12에 전기모터 세 개를 물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시스템 출력 1,015마력입니다. 국내 인도는 2025년 5월 시작됐고 배정 물량은 진작에 소진됐습니다.
이번 달엔 레부엘토 SV도 나왔습니다. 1,963대 한정에 1,065마력, 0→100km/h 2.4초로 SV 계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준 차입니다.
문제는 기본형 레부엘토도, SV도 전부 쿠페라는 점입니다. 2026년 8월 현재 람보르기니 양산 라인업에 일반 판매용 V12 로드스터가 없습니다. 지붕 열리는 12기통 람보르기니를 지금 사고 싶다면 아벤타도르 계열 중고를 찾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수요는 남아 있는데 공급이 늘어날 방법이 없으니 가격이 안 빠지는 이유로 이만한 게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 V12 오픈톱"은 틀린 말입니다
SVJ 로드스터를 소개할 때 흔히 '람보르기니 마지막 V12 오픈톱'이라고 부르는데,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닙니다.
올해 5월 이몰라에서 페노메노 로드스터가 공개됐습니다. V12에 모터 세 개를 얹어 1,080마력을 내는 오픈톱인데, 전 세계 15대짜리 원오프라 일반 고객이 주문할 수 있는 차는 아닙니다.

아벤타도르 안에서도 SVJ가 마지막이 아닙니다. 진짜 마지막은 얼티메 로드스터고 250대만 만들었습니다. 2022년 9월 아벤타도르 생산을 끝낸 차가 이 모델입니다.
정리하면 SVJ 로드스터는 '마지막 V12 오픈톱'이 아니라, 전기모터 없이 자연흡기 V12만 얹은 마지막 세대의 트랙 지향 오픈톱입니다. 표현을 바로잡아도 가격 얘기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15대짜리 원오프는 시장에 나올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얼티메가 더 귀한데 왜 SVJ가 비쌀까
생산 대수만 보면 얼티메 로드스터가 훨씬 희귀합니다. 250대 대 800대니까요. 출력도 780마력으로 SVJ보다 10마력 높습니다. 실제 국내 매물 호가를 나란히 놓아보면 SVJ 로드스터 9.50억, 얼티메 쿠페 8.25억(22년식·1,502km), S 로드스터 6.70억(21년식·4,260km), LP700-4 로드스터 3.50억(15년식·21,816km) 순입니다. 연식·주행거리가 다 달라 단순 비교이긴 하지만, 얼티메가 더 최근 차인데도 SVJ가 위에 있는 그림입니다.

이유는 얼마나 달라 보이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SVJ에는 고정식 대형 리어윙, ALA 2.0 능동 공력, 사방에 붙은 카본 파츠, 그리고 'Jota'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도로에서 스쳐 지나가도 일반 아벤타도르와 다른 차라는 게 바로 보입니다. 얼티메는 SVJ의 성능에 아벤타도르 S의 편안함을 섞은 최종판에 가깝습니다. 의미는 더 크지만 외형의 충격은 SVJ가 세고, 중고 시장에서는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게 작용합니다.
이유 둘: 숏폼이 이 차를 계속 살려두고 있습니다
인스타 릴스나 유튜브 쇼츠에서 슈퍼카 영상을 자주 보면 알겠지만, 배기음 영상 중에 아직도 SVJ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신차가 계속 나오는데도 그렇습니다.
자연흡기 V12는 8,500rpm까지 돌면서 소리가 계속 위로 올라갑니다. 터보처럼 중간에 눌리지도 않고, 하이브리드처럼 모터 개입으로 끊기지도 않습니다. 거기에 로드스터는 뒷유리를 지붕과 따로 열 수 있어서 엔진 소리를 실내로 더 끌어들이도록 일부러 설계됐습니다. 영상 찍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이 없습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계속 알아보는 차가 된다는 뜻이고, 찾는 사람이 안 줄면 값도 잘 안 빠집니다.
이유 셋: 아벤타도르 디자인은 아직 안 늙었습니다
2011년에 나온 차니까 15년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도로에서 봐도 구형이라는 느낌이 안 듭니다. 오히려 레부엘토보다 아벤타도르가 낫다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SVJ의 흰색 스트라이프와 대형 리어윙은 출시 당시에도 "너무 요란하다"는 평이 있었던 요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요란함이 이 차를 알아보게 하는 표식이 됐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얼마에 팔렸나
국내는 표본이 너무 적어서 해외 공개 거래 기록을 가져왔습니다. 최저 38만 4천 달러, 최고 247만 5천 달러, 평균 113만 8천 달러입니다. 미국 신차 기본가가 57만 4천 달러였으니 평균만 놓고 보면 신차가의 두 배 근처입니다.
편차도 봐야 합니다. 최저와 최고가 여섯 배 넘게 차이 납니다. 최상단에는 SVJ 63이나 특수 컬러, 극저주행 개체가 섞여 있고 최저 기록은 2024년 1월 거래입니다. "SVJ 로드스터는 얼마"라고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신차가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건 사실이지만, 개체마다 상태와 사양 차이가 커서 평균값 하나로 내 차의 값을 예상하면 어긋납니다.
디테일러 눈에는 주행거리보다 이게 먼저 보입니다
예전에 디테일링샵을 하던 시절 손님 중에 SVJ 로드스터 오너가 있었습니다. 정식 수입이 아니라 직수입으로 들어온, 대한민국 1호 SVJ 로드스터였습니다. 그 차를 관리하면서 느낀 건 세 가지입니다.
- 카본이 도장보다 무섭습니다. SVJ는 외장 카본 파츠가 많은데, 클리어층이 자외선에 약해서 관리 안 하면 누렇게 뜨고 한 번 변색되면 폴리싱으로 안 돌아옵니다. 재도장이나 파츠 교체로 가야 합니다. 특히 프런트 스플리터와 사이드스커트는 차고가 낮아 돌 튐을 계속 맞기 때문에, 이 레벨 차량은 대부분 전체 PPF가 작업돼 있습니다. 매물 볼 때 꼭 확인해야 할 부분입니다.
- 로드스터는 루프 주변이 승부처입니다. 탈착식 패널이라 탈부착을 반복하면서 접합부 씰과 도장 엣지에 스크래치가 쌓입니다. 겉만 봐서는 잘 안 보이는데 조명 각도를 바꾸면 바로 드러납니다. 실사를 간다면 루프를 떼서 접합면을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 주행거리 적은 차가 항상 좋은 건 아닙니다. 지난 7월 해외 경매 사이트에서 입찰 도중 내려간 SVJ 로드스터 매물이 있었는데, 댓글로 판매자 사진을 이전 매물과 대조하던 사람들이 주행거리 기록이 안 맞는 걸 찾아냈습니다. 6년 동안 오너가 네 번 바뀐 차였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슈퍼카는 대부분 집에 세워두고 가끔 몰기 때문에 몇 년을 보유해도 1만km 미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차는 계기판 숫자보다 사고·도색 이력, 정비 기록, 오너 변경 횟수, 보관 환경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래도 '돈 버는 차'로 보면 위험합니다
- 국내 매물 자체가 손에 꼽습니다. 비교 대상이 서너 대뿐인 시장이라 한 대만 빠져도 '시세'가 통째로 움직입니다. 판매자가 급하지 않으면 높은 가격표를 몇 년씩 걸어둘 수도 있습니다.
- 유지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와 전용 타이어는 일반 수입차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고, 카본 파츠는 작은 충격에도 부분 수리가 안 돼 통으로 갈아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레부엘토 로드스터가 정식 양산 모델로 나오는 순간, 지금 SVJ에 몰려 있는 오픈톱 수요가 일부 흩어질 수 있습니다. 이 글의 논리가 가장 크게 흔들리는 지점입니다.
그러니 '사면 무조건 오르는 차'가 아니라 '감가를 방어할 이유가 분명한 차' 정도로 보는 게 맞습니다.
마무리
값이 안 떨어지는 이유를 정리하면 결국 하나입니다. 지금은 같은 조건의 차를 새로 살 방법이 없다는 것.
800대만 만들었고, 전기모터가 없고, 지붕이 열리고, 후속에는 그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람보르기니가 레부엘토 로드스터를 내놓는 순간 이 그림은 조금 바뀔 겁니다. 그때까지는 SVJ 로드스터가 그 자리를 혼자 갖고 있는 셈입니다.
같은 돈이면 더 빠른 신형 레부엘토를 기다리시겠어요, 아니면 지붕 열고 자연흡기 V12 소리를 들을 수 있는 SVJ 로드스터를 고르시겠어요?
※ 본문의 국내 가격은 2026년 8월 23일 기준 국내 중고차 플랫폼 등록 매물 호가이며 실제 거래가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해외 실거래 기록은 CLASSIC.COM 공개 집계 기준입니다.




